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제연행 도민 日 전역서...일부 명단 추가발견

나가사키(長崎) 원폭피해자 명단 중 제주인과 함께 마츠시로(松代) 일본대본영(日本大本営) 지하갱도 건설에 동원된 제주인도 찾는 성과를

기자명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한국인이 강제 연행돼 억울하게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이중 제주인의 실태도 일부나마 드러나고 있다.

제주도의 지원하에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센터장 박찬식) 일제강점기 강제연행 제주도민에 대한 추적 조사팀(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소 재외제주인연구센터 소장 고광명 박사)은 영화 ‘군함도’로 재조명되고 있는  미쓰비시(三菱) 다카시마(高島)탄광(군함도와 고도)에서 제주인 2명의 희생자 명단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들의 명단은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의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에도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나가사키(長崎) 원폭피해자 명단 중 제주인과 함께 마츠시로(松代) 일본대본영(日本大本営) 지하갱도 건설에 동원된 제주인도 찾는 성과를 이뤘다.

특히 관련자료에 따르면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노역은 한반도 지역 1144개, 일본 지역 1257개기업 등 에서 강제 노동 등 부역을 했다는 것.

이중 그 당시 가장 핵심이었던 탄광지역에 강제로 노역에 동원돼 사망한 한국인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는 많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강제 연행된 한국인에 대해 일본군에 참전한 군수요원 및 일본군으로 동원돼 일본군과 함께 죽음을 맞은 한국인들은 야스쿠니(靖国) 신사(神社) 등에 합사해 추앙하는 등 특별관리하고 있다.

 

일본정부에 따르면 후생성(厚生省)이 야스쿠니 신사에 제공한 한국인 자료는 2만 727명분이고, 야스쿠니 신사에 따르면 합사는 2만1181명이 합사됐다

군함도에서 사망한 제주인에대한 화장관련 서류. 이 자료는 민간인에 의해 서류가 보관됐도 일본 재야 역사학자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탄광 등에 동원돼 사망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명단조차 관리 하지 않고(기업별 관리) 사망자에 대한 처우도 화장 등 명단과 비석 등에 이름이 올라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고 유골을 무단방치 내지 모르게 파묻어 이들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본정부는 이에 대한 진상도 밝히지 않는 등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군다나 억울하게 탄광 등에서 노역하다 죽어간 이름모를 한국인의 유골이 속속 발견돼 일본 시민단체, 재일한국인,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 등에 의해 연구되고 추모비도 마련돼 추도식도 일부 갖고 있는 것으로 현지조사 결과 확인했다.

이들 개개의 기업들이 관리됐던 한국인에 대한 처우와 사망자에 대한 제대로 된 사후 처리도 없다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알려진 미쓰비시(三菱) 광업 사키토(崎戸)탄광이 있었던 사키토쵸(崎戸町)에는 조선인 212명이 화장된 기록이 남아있다.

오시마(大島)탄광(大島町)에서는 12세의 채탄원이 사망했고 섬의 탄광으로부터 헤엄쳐 도망치다 익사한 비극도 있었다.
 
하시마 탄광에는 122명의 화장 매장 허가증이 존재해 유족이 반환을 요구했으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일본기업들은 불성실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미쓰비시 다카시마 탄광 가족 포함 3500명 다카시마 탄광 사원의 증언에도 “인부 많을 때 5000명 이상 있었고 이중 1/3 조선인이 아니었을까”고 예상했다.

또한 일본 유배지로 유명한 사도(佐渡)섬 금은탄광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인들이 동원돼 금은채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강제 연행된 조선인은 탄갱이나 광산, 토목 현장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하시마 자료에 따르면 1944년과 1945년 조선인의 사망률은 일본인의 2배에 가까웠다.

한국인의 사망원인은 질식, 압박, 익사, 사고사 등 변사의 비율이 병사를 상회했다고 한다. 이는 노동현장에서 조선인이 얼마나 참혹한 학대를 받고 있었는지 고발하고 있다.

탄광서 숨진 한국인에 대한 방치된 유골을 수습해 관리하는 모습.

기타큐슈(北九州)시 고쿠라(小倉)교회 한국인 주문홍(朱文洪) 목사는 “규슈지역 고쿠라(小倉)탄광, 야하다(八幡)제철 탄광지역에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 목사는 “이 지역에 이름도, 고향도, 나이도 모르는 무명의 희생당한 유골 등을 일본 절 등에 방치된 유골을 故 최창학 목사가 납골당을 만들었다”며 “오다야마(小田山) 무덤 100여구 시체 추도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임금격차, 차별대우, 인권 문제와 함께 트럭 사고, 고문으로 죽은 사람, 병 치료도중 죽은 사람 등 억울한 원혼이 많다”며 “아직까지 유골도 수습되지 못한 이들 중 강제 연행된 한국인들에 대해 정사가 아닌 비사 등 발로 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다야마 무덤 추도식 27회째 추진한다.”며 “추모관인 영생원은 기타규슈 치쿠호(筑豊)지역의 탄광노동을 위해 조선반도에서 강제징용 등으로 와서 불행히도 사망한 동포와 고쿠라 교회 신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조세이(長生)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사무국장 오바타 타이사쿠(小畑太作) 목사는 “전직 고교 교사(대표)가 연구하면서 수몰된 조난자 등 후쿠오카(福岡)현 국가를 위해 산업인 명부 조세탄광 희생자는 관련자가 기록하고 일본회사에 보유했다”며 “수몰된 탄광노동자에 대한 수몰자 유골 등 조선인 DNA에 대해 감정은 하지 않았다” 말해 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드러났다.

오바타 목사는 “1258명 희생자들이 본적지별 최종적으로 유족들에게 유골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몰라서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사끼(長崎), 히로시마(広島) 지역은 강제연행자, 사망자 등 규모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가사끼시는 미쓰비시조선소와 군함도(하시마섬), 고도(다카시마섬) 등 탄광이 있는 과거 군사적 요충지이었다.

미쓰비시 고도(다카시마섬)탄광은 군함도(하시마섬)와 고도(다카시마섬)로 이뤄진 해저 탄광으로 탄광 지옥의 강제노역 현장은 태풍으로 인해 갈수가 없고 군함도박물관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 재일제주인 강제연행 등에 대한 권위있는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는 조사팀과 인터뷰에서 군함도는 다카시마(高島)탄광의 한 개의 갱도에 불과하다는 증언도 얻어냈다.

또한 다케유치씨로 부터 군함도가 속한 미쓰비시 고도(다카시마섬) 탄광에서 사망한 제주인의 화장에 대한 자료도 얻는 성과도 이뤘다.

한편 조사 주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고 있으나 한국 조사는 강제 연행된 수가 740만 명이라고 하며, 북한에서는 840만 명이라고 한다. 현재 600만 명으로 추산도 하는데 지금 재검토하고 있어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강제연행자가 450만 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것을 토대로 추정한 것인데, 조사단에서 재검토하는 단계다.(출처;제주뉴스)

저작권자 © 제주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