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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감독님 궁금해요] 비틀즈와 잡스는 왜 싸웠나요?Apple corps VS Apple computer
양성원  |  MHNpress@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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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6  17: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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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15일 애플 홈페이지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양성원] 2010년 11월 15일 애플 홈페이지가 '공사 중'으로 바뀌면서 사용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1월에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신제품 발표로 아이패드가 공개되었고 주기상 새로운 라인업을 발표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월 17일 마침내 홈페이지에 비틀즈 사진이 메인으로 올려진다.

▶ 형이 거기서 나와??

   
▲ 2010년 11월 17일 애플 홈페이지 The Beatles. Now on iTunes

이것에 대한 반응은 크게 2가지였다.

애플 사용자는 또 다른 혁신제품에 대한 기대에 비교해 고작(?) 록그룹의 아이튠즈 서비스 소식뿐이냐며 실망하는 분위기였고 비틀즈의 팬은 아이튠즈에서 그토록 바랐던 음악을 드디어 들을 수 있다는 반가움과 한편으로는 디지털 음원을 끝까지 반대했던 아티스트의 자존심도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묘한 감정의 아쉬움이 공존해 있었다.

물론 소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공공연히 자신이 건설한 아이튠즈라는 뮤직스토어 플랫폼에 서비스되기를 희망하였고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아이팟 기능을 설명할 때 비틀즈의 'Lovely Rita'가 플레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였다.

▶ Apple corps VS Apple Computer

   
 

비틀즈와 스티브 잡스의 분쟁은 결과론적 관점 때문에 아티스트와 IT 대기업의 싸움으로 비치는 기사와 의견이 많았는데 시작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1968년에 설립된 애플 코어는 애플 일렉트로닉스(전자제품), 애플 필름즈(영화,뮤직비디오), 애플 퍼블리싱(음반사), 애플 레코드(음반사), 애플 리테일(마켓), 애플 스튜디오(녹음 스튜디오)를 거느리는 대기업이었고 애플 컴퓨터는 1976년에 이제 갓 PC를 만들기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물론, 이 둘이 맞붙은 1978년은 애플 코어의 사업이 음악사업부를 남기고 대부분 실패하였고 비틀즈마저 해체된 한참 이후의 일이긴 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명을 애플컴퓨터로 정하고 로고마저 사과 모양으로 디자인하면서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첫 소송이 시작된다.

이것은 1981년까지 계속되다가 애플컴퓨터가 8만 불을 물어주고 두 회사는 음악 분야와 컴퓨터 사업 분야를 서로 침범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단락된다. 비틀즈의 관용이었던 것인지 스티브 잡스의 야심을 몰랐던 것인지 어쨌든 상표권 침해 소송치고는 싱겁게 끝난 편이다.
 

▶ 32인조 오케스트라를 퍼스컴에 탑재하다

   
▲ Apple II GS

 

     
 

그렇게 영원히 충돌할 일이 없을 것만 같던 두 회사가 돌연 2차전으로 맞붙게 된 것은 1986년에 애플II GS 컴퓨터를 출시할 때 사운드 기능을 하는 Ensoniq 503 DOC 칩세트를 탑재하면서였다. 지금도 PC를 사면(조립하면) 기본적인 기능만 하는 사운드카드조차도 별도로 사야 하는데 이 칩세트는 무려 32개의 음을 동시에 낼 수 있고 Wavetable Synthesis 기능(ADSR 음색 변조 및 8bit PCM sampling 기능)을 하는 전문 작곡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악기 음색을 갖고 있고 변조까지 할 수 있는 32인조 풀 오케스트라가 퍼스컴에 탑재된 것이었다. 이 칩세트가 당시로써는 얼마나 대단했냐면 신시사이저 회사 Ensoniq의 대표 명기인 Mirage와 SQ-1에 사용된 것이었다. 더욱이 Mirage는 1700불에 동시 발음수도 8개에 불과했다.

   
▲ Apple II GS Sound System Block Diagram

앞서 양사는 컴퓨터 부문과 음악 부문을 서로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던 상황이라 스티브 잡스가 보란 듯이 비틀즈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신시사이저의 춘추전국시대인 80년대에 서로 간의 규격을 맞추기 위해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표준이 제정되고 90년대부터 컴퓨터음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현대 음악사에 비추어 볼 때 스티브 잡스는 이미 컴퓨터 사업가를 넘어 자신이 구축한 멀티미디어 플랫폼을 꿈꿨던 것이 아니었을까.

애플컴퓨터는 어차피 애플II로 잘되는 집안이었고 사업가는 제품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금의 그래픽카드처럼 아웃소싱을 통해 전문가에게만 옵션으로 판매해도 됐을 텐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강행한 덕분에 1991년 2,650만 불을 물어주게 된다.

   
▲ Ensoniq Mirage DSK

▶ 나비효과 최후 승자는?

애플 상표권으로 시작된 나비효과는 8만 불에서 5억 불까지 커진다.

스티브 잡스가 2003년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론칭하자 이쯤이면 막나가자는 것으로 받아들인 비틀즈는 또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2007년 두 회사는 5억 불(추정이며 10억 불이란 의견도 있음)에 합의하고 길고 길었던 분쟁을 마침내 끝낸다. 사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포기하고 피치(peach, 복숭아) 같은 그럴듯한 이름과 로고로 바꾸면 될 일이었다. 누가 봐도 파장이 클 것 같은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은 나비효과의 파고를 노렸던 것일까?

그 결과로 스티브 잡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마다 크게 성공을 거둔다. 2001년부터 판매된 아이팟의 성공으로 이미 뭐를 해도 되는 집안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애플 상표권을 5억 불에 사들이면서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급기야 상표권을 빌려 쓰게 된 비틀즈. 아이폰, 아이패드로 유비쿼터스 시장까지 평정하고 앱스토어 제국까지 종속시킨 슈퍼 갑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년 전인 2010년 11월 17일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 비틀즈의 음원이 판매되기 시작한다. 숙원 사업을 이루고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다음 해에 스티브 잡스는 안타깝게도 사망한다.

비틀즈의 저작권을 갖고 있으며 아이튠즈에 올려지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미국의 마이클 잭슨, 애플의 상표권을 가져가고 음원 서비스를 이룬 미국의 스티브 잡스. 이 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영국의 폴 매카트니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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